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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한열 문학상 수상작

2013년 이한열문학상 시부문 - 하성훈, <리히텐슈타인 거리>
글쓴이 : 관리자 등록일 : 2013-12-12 00:00:00 조회 : 3597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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리히텐슈타인 거리

하 성 훈

 

1

 

그날, 마른 활엽수 잎들이 부스럭거리며

내내 말을 걸어왔지만

나는 거리 쪽을 응시하고 있었다

경적을 내지 않는 자동차들,

그리고 낯선 얼굴들이 빼곡 들어찬 거리 위에서

가을은 몽환의 저녁을 펼칠 태세였다

이 거리에도

옛날엔 숱한 제후와 병정들이 말굽으로 내달렸을 터인데

대관식처럼 빛나던 위엄은 이제 어디로 갔나

신성로마의 칼이 결국에는

아주 허망하게 부러지고

그 칼을 장사(葬事)한 지도 오래되어서인지,

길을 가고 있는 젊은이들은

궁정을 거니는 듯 자유를 안고 있다

피로 거머쥔 선거권을 모든 이방인들에게

자랑스레 한번 보여주려는 듯이,

거리의 사람들은 자유와 사랑을 사용설명서대로

능숙히 쓰고 있는 것이다

과연 무엇이 우리를

자유하게 했고, 사랑을 할 수 있게 했을까

 

 

2

 

사랑의 본질이란

거리의 창가 화분마다 핀 꽃이건만,

사랑을 잃은 자들은 외로움에 떨고 있으니

그걸 어느 누가 알 건가

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

자신의 또 다른 것을 제한할 수 있는지

저 알프스 산정들에게 물어나 보라,

어림도 없는 일이다

거리를 다니는 모든 자들이

삶에 열광하거나 절망하고, 어떤 이들은

사랑에 깊이 빠져 있기에, 이 거리의 순례마저

나는 쉬이 끝낼 수 없다

라인강 물이 끓어올라 거리를 덮친다 해도, 운명이 나를

밀치고 간다 해도, 사랑은 원래 우리를

신명나게 춤추도록 하는 법이다

이 거리에서 만난 여인들의 눈동자, 그리고

그 눈동자의 그윽함,

낯선 목로주점과 그 잔의 향기까지

이 모든 것들은 리히텐슈타인의 꽃이다.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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